햇살/경주유적답사

[스크랩] 고선사를 그리며...

오직모를뿐~ 2011. 9. 18. 23:32

2011.06.28

 박물관 넓은 정원 구석에 의젓한 탑이 하나 서 있다...

짝퉁 석가탑,다보탑의 화려함에 가려져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사람들도 찾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점점 이 탑의 존재는 잊혀져 가고 있다...

 

 개발과 보존은 우리 시대의 딜레마...

암곡동에 고선사가 그대로 있었다면 아마 국보인 고선사탑이 이렇게 잊혀진 존재가 되지는 않았을텐데...

 

건물의 기초가 되었을 초석들...

 

고선사가 있던 내동면 암곡리는 산 중턱에 넓은 평지가 있었다고 한다...

좁은 계곡을 옆에 끼고 고선사탑은 우람한 모습으로 산곡을 메웠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집 잃은 처량한 신세여서 내 마음조차 쓸쓸하다...

 

 비각터의 지대석과 비석 받침...왼쪽엔 금당터였을라나???

 

 원효의 후손인 설중업이 원효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당화상비의 귀부...머리는 분실되고 몸통만 남았다...

8세기 후반에 세워진 이 비로 말미암아 원효가 신문왕 6년(686) 3월 30일 향년 70세로 고선사에서 입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분황사에도 고려시대에 세운 화쟁국사비의 대좌가 남아 있어서 원효와 분황사는 깊은 관계에 있음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미 신라시대에 원효의 비를 세웠음으로 미루어 볼 때 고선사가 그와 더욱 깊은 사연을 맺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청장년기에 분황사에서 교학을 연구했고 노년기에 고선사에 머물며 화엄 사상을 완성했을까???

 

 

원효가 고선사에 머물며 아침마다 혹은 저녁마다 이 탑을 맴돌고 쓰다듬었을텐데

이 탑을 돌면 원효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박물관 건물이 안보이는 곳을 배경으로 찍었더니 3층 옥개석이 많이 망가져 있네 ㅠ.ㅜ

완만한 능선의 남산과 쬐끔 보이는 해목령 ...

 1층 옥신 각면에 문비가 양각되어 있다...문비가 있다는 것은 그 안에 공간이 있단는 암시??

분황사 첫째 탑신에 있는 돌문이 연상되는 것은...자꾸만 원효 스님을 생각해서인가???

 

박제가 되어 버린 고선사탑일 망정 우람한 모습은 우리나라 사상사에 우뚝 솟은 원효의 자태같다...

부재들을 두툼하게 다듬어 덤덤하게 쌓아 올렸지만 의젓하게 만든 탑에서 삼국을 통일한 신라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넉넉함,안정감,우람함...그 속의 포용성과 인자함이 깃들어 있는 신라의 명작...

 경주 박물관엘 가신다면 뒤뜰 구석에서 쓸쓸히 잊혀져 가는 고선사탑을 만나러 가보세요...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커져서 그 앞에 서면 웅혼함에 홀딱 반하게 된답니다^^ 

출처 : 경주 남산 해설사 기초반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글쓴이 : 달빛소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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